HERI의 눈

[Weconomy | 주수원의 협동조합 A to Z]

국회가 마련한 생협 공제사업 허용 법률, 6년여 만에 공정위는 ‘바꾸자!’



생협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생협 회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생협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생협 회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마침내 구속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대가’를 바라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쪽에 뇌물을 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차원의 여러 특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된 특혜 의혹이 눈길을 끈다. 삼성의 요청에 따라 삼성 계열사 간 순환출자 해소 요건을 완화해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경제 검찰’로도 불리는 공정위는 재벌 같은 경제적 강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관이다. 대신 중소기업이나 소비자 등 상대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경제주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강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정위 설립 근거에 해당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조는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공정위 누리집(http://www.ftc.go.kr)에 올라온 정재찬 위원장의 인사말에도 같은 뜻의 문구가 나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촉진과 소비자 권익의 제고에 오늘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대-중소기업 간, 생산자와 소비자간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따뜻한 균형추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공정한 사회 구현’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경제적 힘의 불균형 바로 잡겠다면서 ‘삼성 봐주기'


그러나 이번 특검 수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공정위는 삼성 앞에만 서면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 최대 재벌 오너 일가의 편법·부당 경영세습을 차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은근히 도와줬다고 한다. 재벌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정책적 재량’이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약자에 대한 공정위의 정책 역량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객관적인 현실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보호와 배려와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 증진을 교묘하게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의 공제사업 처리이다.


생협의 공제사업은, 국회가 2010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률(생협법) 전면개정안을 통과시켜 법적 시행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후속 시행 규정과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관련 법률 조항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 있다. 한두 달만 지체되어도 숨통을 막는다며 강한 항의가 들어올 수 있는 경제활동 요구를 공정위는 1~2년도 아니고 6년여째 묵혀온 것이다.


협동조합의 공제(Mutual-aid)란, 조합원으로부터 받은 기금을 바탕으로 조합원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질병·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조합원들끼리 미리 정한 교부금으로 돕는 사업이다. 일반 민간보험과 성격은 비슷하지만, 상호부조의 정신에 따라 가입 조합원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게 근본적인 차이다. 민간 보험사와는 달리 시장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업이 아니어서 공제기금 규모가 작고, 보험모집인 수당과 같은 사업비가 적게 든다. 공제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잉여금의 배당도 제한적이다. 그만큼 보험료가 쌀 수 있고, 상품구조도 비교적 간단해 가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점에 힘입어 유럽과 일본 등 협동조합이 발달한 곳에선 지역이나 직종, 직장 단위의 다양한 생협 공제사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공정위의 ‘직무 유기’로 장기간 생협 공제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공정위가 미적거리는 이유는 사업이 부실화될 경우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보험업법 적용을 받지 않아 피해 예방 등을 위한 감독체계가 부재하며, 공제기금의 파산 시 조합원 피해구제 장치가 미비하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부실 우려, 감독 부재, 구제 장치의 미흡 등은 공정위의 직무 유기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진정으로 그런 우려가 있다면 관련 제도를 정비해 시행 여건을 갖추는 게 공정위의 임무일 터인데, 계속 미뤄오면서 똑같은 핑계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의 직무 유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생협이 공제사업을 할 수 있도록 연말까지 관련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런데 연말을 넘기고 지난 2월 7일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내어 “생협의 공제사업이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생협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3월 20일까지 입법예고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공제사업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생협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생협 단체들 “공정위 입법예고안은 사실상 공제사업 거부"


공정위 개정안은 ‘전국연합회를 설립한 생협에 한해서만 공제사업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서 전국연합회 설립 요건은 ‘의료생협과 그 외 생협이 각각 인가된 조합 수의 2분의 1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의료생협은 의료생협끼리, 나머지 지역생협과 대학생협이 통틀어 전국 단위조합의 절반 이상 동의를 모아 연합회를 구성하면 공제사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생협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공제사업의 물꼬를 터주는 게 아니라 사실상 제동을 걸겠다는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현실적으로 설립되기 어려운 조직에만 사업을 허가해주겠다는 안이기 때문이다. 2010년 국회가 어렵게 생협 공제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놓았는데, 이제 와서 공정위가 이를 뒤집는 법률 개정안을 발표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생협 한의원인 서울 영등포 우리네 한의원에서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생협 한의원인 서울 영등포 우리네 한의원에서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내 생협 활동은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취급 물품과 사업 범위가 확대되면서 빠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공정위의 생협 인가 현황자료를 보면, 2011년 391곳이던 생협 수는 2015년 666곳으로 70.3% 증가했다. 조합원 수는 75만명에서 155만명으로 연평균 18%에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하며 5년 만에 두 배나 늘었다. 분야별로는 2015년 현재 의료생협이 496곳으로 전체의 70.4%를 차지하며 나머지 친환경 농산물과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는 지역생협이 168곳, 대학생협이 29곳씩이다. 생협이 이처럼 활성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생협마다 정체성과 조합원 구성, 사업구역 등이 달라 특정 사업만을 목적으로 한 전국연합회를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공정위가 생협의 특성과 구체적인 활동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제사업 허용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iCOOP생협 독자인증 선포식’에서 소비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iCOOP생협 독자인증’은 물품의 안전성과 유기농업의 순환성, 지속가능성, 생물의 다양성 등을 안전기준에 따라 독자평가해 등급을 표시하는 인증체계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iCOOP생협 독자인증 선포식’에서 소비자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iCOOP생협 독자인증’은 물품의 안전성과

유기농업의 순환성, 지속가능성, 생물의 다양성 등을 안전기준에 따라 독자평가해 등급을 표시하는 인증체계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현행 소비자 기본법의 4조와 6조는, 국가에 대해 ‘소비자의 건전하고 자주적인 조직 활동에 대한 지원·육성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생협의 공제사업은 그야말로 조직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 활동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한 생협 공제사업을 지원하기는커녕 통제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 갇혀있다. 재벌처럼 ‘힘센 소수’는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면서 ‘힘없는 다수’가 바라는 경제활동은 억누르는 게 지금 공정위의 모습이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


등록: 2017-02-22 11:18 수정: 2017-02-22 16:30

한겨레에서 보기: http://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36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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