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하이라이트

[더 나은 사회]
수만 종 화학물질 안전성 확인 극소수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가능성
기업·정부 부실한 관리체계 불신 키워

성분 표시, 대체재 개발 생협 제품 인기
조합원이 기준 정하고 엄격한 품질 관리
성분 완전표시제 등 캠페인에도 앞장서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자연드림 매장에서 생협 조합원이 생활제품을 고르고 있다. 아이쿱생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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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자연드림 매장에서 생협 조합원이 생활제품을 고르고 있다. 아이쿱생협 제공onebyone.gif?action_id=c445932b65eb5e78d3ec729f5ee2588

‘안방의 세월호’로 불렸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 2001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만들어지고 2011년 판매 금지가 될 때까지 신종플루 등의 호재를 업고 연간 60만개가 팔렸다. 당시 동네 마트에서 누구나 살 수 있었던 해당 제품에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국의 800만명 사용자 가운데 현재까지 1124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피해자가 5410명에 이르렀다.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 있으며,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회적 해결책 마련을 위해서는 남아 있는 과제가 많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외에 어떠한 화학물질이 우리의 생활을 현재 위협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만 종의 화학물질이 넘쳐나지만, 이 중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물질은 극소수이다. 환경운동연합 최준호 국장은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고려해서 용도, 노출 방식, 유해 정도 등에 따라 화학물질과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을 통합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소비자에게 이러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제조 과정에서부터 원료화학물질 안전까지 모든 안전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최종 제품에 명확한 표시가 있어야 하고, 해당 표시를 통한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2007년부터 화학물질규제(REACH) 제도를 도입해 연간 1t 이상 제조 또는 수입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제조량, 수입량, 위해성 등에 따라 제조와 유통 등에 제한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있으나, 국제사회 기준에는 많이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 사이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8배나 급증했다. 지난해 7월13일 국회도서관에서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전문가 500인 기자회견’이 열려 환경 관련 법률 개정을 촉구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28일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안전관리법(살생물제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비용 부담 등을 우려한 산업계의 반발 등으로 논란에 싸여 있다.


기업에 대한 불신, 정부의 관리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서 만든 생활제품을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쿱생협의 작년 하반기 생활용품 판매액은 123억4천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115억2천만원에 비해 7.15% 상승했다. 소비자들이 생협 제품을 믿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들 스스로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생협은 소비자들이 직접 출자해서 함께 운영하기에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또한 조합원 스스로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엄격한 품질관리가 이뤄진다. 두레생협의 자주인증제, 아이쿱생협의 아이쿱인증시스템, 한살림의 자주인증제, 행복중심의 생활재 자체인증기준 등이 그런 예이다.


먼저 생협에서는 불필요한 화학성분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꼭 써야 할 경우에는 더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인 상품을 만들고자 더욱 노력한다. 예를 들어 휴지의 경우 우유팩을 생산하고 남은 자투리를 재활용하여 제조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몸에 좋지 않은 형광증백제, 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세제, 샴푸, 치약 등의 생활용품도 마찬가지이다. 치약에 들어가는 각종 화학물질, 방부제, 기포제,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존의 화학성분을 쓰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유해성 논란이 있는 성분은 지속적으로 대체하는 노력을 한다. 아이쿱생협 식품연구소는 6명의 연구원이 일하며 지속적으로 대체제품 연구·개발에 힘쓴다. 이곳에서는 암 유발 논란이 있는 캐러멜 색소를 대체하는 안심캐러멜시럽을 개발하는 등 대체 첨가물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한다. 이규남 소장은 “식품에는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인공 화학 첨가물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며 화학 첨가물의 잠재적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 소장이 식품 첨가물 제조회사에 다니다가 생협 식품연구소로 온 이유도 내 아이가 먹어도 괜찮은 식품을 개발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 급식에서 자신이 개발한 생협 제품이 건강식으로 소개되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연구소만이 아니라 조합원들끼리 직접 대체재를 만들기도 한다. 면 생리대를 만드는 모임이 한 예이다. 일회용 생리대는 비닐(폴리에틸렌), 고분자흡수체, 형광증백제 등의 화학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가려움, 따가움, 짓무름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목화송이협동조합’은 한살림 조합원들의 모임이 발전해 마을기업이 된 경우이다. 2014년 가수 이효리가 블로그를 통해 알려서 화제가 된 면 생리대 역시 목화송이협동조합이 만든 제품이다.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아 이용하는 이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화학물질.jpg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그의 저서 <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2013)에서 현대인의 많은 질 병이 우리 몸에 축적된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나 아이들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천식, 아토피, 당뇨 등이 늘어난 것은 먹거리가 오염되고 유해 화학물질에 많이 노출된 게 원인이다. 생활 패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동안 200종 정도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임 교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담배만큼 나쁜 음식을 아이들에게 권하는 것”이라며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특히 이렇게 우리 몸에 쌓인 화학물질은 쉽사리 배출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몸속에 계속 쌓이는 유해물질을 ‘바디 버든’(Body Burden)이라 부른다. 독일은 1985년부터, 미국은 1999년부터 바디 버든의 문제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부 차원의 해결 노력을 벌이고 있다.


물론 화학물질이 무조건 해롭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의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분도 있고, 아직 위험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성분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소비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협이 소비자로서 알권리를 위해 제품 성분의 완전표시제 캠페인을 하는 이유이다. 소비자기본법은 제13조 ‘소비자에의 정보제공’이란 조항에서 “국가 및 지자체는 사업자가 물품 등의 거래조건·거래방법·품질·안전성 및 환경성 등에 관련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협은 소비자의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품 성분에 관심을 가지고 유해물질 정보를 확인하고 문제제기를 할수록 더 안전한 제품들이 생산되고 판매될 수 있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


등록: 2017-02-23 10:34

한겨레에서 보기: http://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38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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