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유일한 선진국으로 대접을 받아 왔다. 중국은 주변 열강의 침략과 내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개방정책이 본격화된 이후 낮은 인건비를 기반으로 선진국의 하청기지 역할을 해 오던 중국은 올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일본의 오랜 수탈에 이어진 내전으로 최빈국 수준이었던 한국의 성장은 더욱 놀랍다. 1970년대에 본격화된 성장세는 이런 저런 굴곡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작년 1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를 국민순소득(GNI)의 0.25%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의기양양한 약속도 이어졌다.


한중일에 쏠리는 세계의 시선


사정이 이러하니 한중일이 저개발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기대를 받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던 한중일이 그간의 경험을 활용해 저개발 국가를 돕는다면, 이전의 원조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한중일 사이에 상당한 차이는 존재한다. 오랫동안 공적개발원조와 NGO 활동을 수행해 온 일본과 여전히 국가개발협력의 수혜를 받고 있는 중국을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제 막 OECD/DAC에 가입해 지난 달에야 ‘한국형’ 사업의 모델화 및 모듈화를 차별성으로 내세운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한국도 ODA에 있어서는 변변한 실적이랄게 없다. (심지어 OECD/DAC 가입시 선언했던 GNI 0.25% 수준으로 ODA를 하겠다는 약속도 2015년 이후로 일방적으로 미뤄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제적 성장에 준하게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를 계속 외면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사례들이 이러한 국제개발협력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기업적 운영원리를 통해 지속가능하게 해결하려는 사회적기업 모델은 저개발 국가에서 그 효율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공정여행, 적정기술 등과 관련한 사회적기업들의 성공 사례는 유사한 모델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빈곤이나 환경과 같은 지구적 문제 해결에 사회적기업 모델이 기여할 공간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기업 방식의 새로운 국제개발협력방식을 논의하는 '2010 아시아미래포럼' 바로가기


사회적기업에서 새로운 국제개발협력 모델을


공정무역은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들에게 더 유리한 교역조건을 제공함으로써 빈곤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무역이 저개발국가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대가로 생태계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확대하는 등 환경적 가치를 확산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정무역 방식을 통해 커피를 수입해 가난한 나라를 도울 뿐만 아니라, 수입한 원두로 직접 카페를 운영하면서 취약계층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예처럼 국내외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들도 많이 생겨났다.


공정여행도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다. 공정무역이 농수산물 혹은 저부가가치의 공산품을 적정한 가격을 지급하고 구매하는 형태라면, 공정여행은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이득을 현지인들에게 돌려주며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여행 형태를 이른다. 저부가가치의 유형 상품을 거래하는 것을 넘어 무형의 서비스를 거래한다는 면에서 차별성이 있다. 서비스는 반드시 노하우의 이전을 통해 학습을 유발하고 인적개발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지역과 국가에서도 적용할 수가 있다. 관광객의 소비가 지역 커뮤니티의 경제 활성화와 소득 분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고기술이 아니라, 적정기술이 사람을 살린다


적정기술이란 주로 저개발국가에 적용되는 기술로, 특정 지역의 특정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형태를 이른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경제성이나 효율성의 면에서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현지의 경제, 문화, 사회, 기술적 환경을 고려한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게 된다.


저개발국가들의 많은 문제가 낮은 수준의 기술적 지원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 어이없는 현실이다. 간단한 펌프시설과 관개수로만으로 농업의 생산성을 수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경우나 매우 저렴한 모기장만으로 매년 말라리아로 죽어 가는 수천명의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기업들은 이러한 적정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통해 현지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수익활동을 통해 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지원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기구 등에 이러한 적정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납품’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국제적 공공조달시장의 규모는 상당히 크다.


국제협력개발 분야에서 사회적기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회적기업은 본질적으로 작은 경제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적 순환 고리를 창출하기가 쉽다. 참여자의 자발성을 핵심고리로 하기 때문에 기부에 의존하던 기존의 관행을 넘어서 창의적 문제해결에 보다 접근할 수 있다. 성공사례를 다른 지역에 이식하기에도 유리하다. 마을이나 커뮤니티 단위의 경제 체제는 비교적 단순하고 또 유사하기 때문이다.


* 12월 15~16일 열리는 '2010 아시아미래포럼 -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에서는 한국이 사회적기업의 방식으로 어떻게 해외개발원조(ODA)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세션이 열립니다. 문의 070-7425-5237. www.asiafutureforum.org.


박상유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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