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1.03 수정: 2014.11.11
경영학 책에서는 유능한 리더를 설명할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설명하곤 한다. 이를 테면, 위기관리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는 위기관리형 리더,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비전제시형 리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체계를 갖추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가져간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은 어떤 리더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은 ‘야신(野神)’이라는 별명과 야구계의 ‘비주류’라는 어찌 보면 극과극의 닉네임을 함께 갖고 있는 독특한 인물이다. SK 와이번스를 포함해 모두 네 팀을 밭으면서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다. 이는 야구팬들 사이에 호불호가 분명한 김성근 감독의 야구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말이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래 한국시리즈를 세 번 차지하는 동안 SK 와이번스에는 80~90년대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해태 타이거즈와 달리 리그를 압도하는 스타플레이가 없다. 지난 몇 년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나섰던 선수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국가를 대표하는 SK 선수라곤 박경완, 정근우, 그리고 김광현 세 명뿐이다. 이는 SK 와이번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타 팀에 비해 월등하진 않은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SK 와이번스의 경쟁력으로 선수 개개인의 역량 보다는 김성근 감독을 중심으로 한 조직력을 드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김성근 감독은 우선, 비전제시형 리더에 가깝다. SK 와이번스에는 과거 팀과의 불화로 이적해 온 베테랑 선수가 적지 않았다. 자칫, 훈련량이 많은 SK 와이번스의 팀 컬러와 갈등 관계에 놓일 수 도 있었지만, 오히려 2007년 SK 첫 한국시리즈 제패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고관절 부상으로 LG 트윈스에서 방출되다시피 떠난 김재현은 한국시리즈 MVP로 보답했다. 이는 김성근 감독의 독특한 훈련 스타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SK 와이번스의 훈련은 베테랑과 신인 할 것 없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한 베이스라도 덜 진루시키고, 더 진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데 주안점을 둔다. 즉, 김성근 감독은 팀을 위해 매 순간 선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수들에게 명확한 미션을 부여한다.
물론, 이러한 희생정신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부단한 훈련과 이에 부합하는 적절한 보상이 뒤 따라야 한다. 자신의 희생이 팀의 성과로 돌아오고, 결국 그 과실이 개인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담보되어야 한다. 현재, SK의 2010년 평균 연봉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1억 1422만원이다.
다음으로, 김성근 감독은 위기관리에서도 특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박경완이라는 최고 중간관리자가 있다. SK와이번스는 롯데 자이언츠와 같이 거포가 즐비한 팀이 아니다. 다양한 작전을 통해 차근차근 점수를 낸 다음 불펜 투수들을 동원해 지키는 야구를 구사한다. 하지만, 5일에 한 번씩 등판하는 선발투수와 달리 경기 중반, 위험 상황에 투입되어 서너 명의 타자와 전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불펜투수는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팀에서는 불펜투수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경기에 최대한 빨리 몰입시킬 수 있는 포수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김성근 감독이 박경완의 역할이 팀 전력의 7할 이상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김성근 감독은 열정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전형이다. 한국시리즈를 압도적인 승리로 마친 그 순간 SK 선수들의 입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이 있다. 바로, 일본시리즈 챔피언을 상대로 한 승리였다. ‘아직 한 게임 남았다.’는 선수들의 한 마디에서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감독의 열망을 대신 느낄 수 있었다.
2010 SK는 98만여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2006년 33만여 명에 불과했던 관중 수가 4년 만에 세배가 늘었다. 그 동안,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좋은 인프라와 가장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관중 동원 성과도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라는 동력이 더해진 결과 상승세가 가파르다.
김성근 감독은 내년이면 우리나이로 고희(古稀)가 된다. 하지만, 야구 감독으로써 그 열정은 어떤 젊은 감독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의 바람대로 올해는 일본시리즈 챔피언을 꺾고,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감독이 되어, 전세계 야구계에 오랫동안 그의 리더십이 회자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